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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보도

[요즘 자원봉사] 재난 현장에서 한 번 더 물었더니 기록이 달라졌다

  • 2026.10.21
  • 관리자
[요즘 자원봉사] 복구 현장 찾은 '기록자원봉사자들이'이 남긴 이야기

지난 여름, 수해를 입은 경기도 파주의 한 장미농장에 자원봉사자 약 100명이 모였다. 1200평 규모의 농장에서 비닐하우스 11동이 침수 피해를 입었다. 물이 빠지기를 기다려 한 달가량 지난 뒤에야 본격적인 복구 작업이 시작됐다. 자원봉사자들은 비닐하우스 안의 잔해를 치우고, 다시 쓸 수 있는 물건과 버려야 할 것을 구분하며 하루 종일 손을 보탰다.



▲수해 피해를 입은 파주의 장미농장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복구 활동을 하고 있다. 기록자원봉사자들은 이 날 복구 과정과 농장주, 자원봉사자의 이야기를 함께 기록했다. ⓒ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

이날 현장에는 복구 과정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러 온 자원봉사자들도 있었다. 파주 현장의 사진과 글을 남긴 박선정 기록자원봉사자는 농장주와 자원봉사자들을 만났다. 피해를 입은 뒤 어떻게 지냈는지, 어떤 마음으로 복구에 나섰는지 물었다.

많은 사람이 다녀간 하루였지만 농장주에게 복구는 이제 시작이었다. 농장주는 풍수해보험 보상을 받으려면 내부 시설을 모두 철거하고 다시 설치해야 한다고 했다. 얼마나 걸릴 것 같으냐는 질문에는 석 달 정도는 필요할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러니깐 올해 장미는 못 보게 되는 거죠."

인터뷰를 마칠 무렵 다시 빗발이 세졌다. 밖을 바라보던 농장주는 "비 더 오면 안 되는데, 걱정되네"라고 중얼거렸다. 하루의 복구 활동이 끝나도 농장주의 걱정은 계속되고 있었다. 기록자원봉자들의 메모에는 복구 작업의 모습과 함께, 다시 장미를 기르기까지 남은 시간과 농장주의 말이 담겼다.

재난 현장의 기록이 필요한 이유

재난 현장의 기록이 왜 필요한지는 시간이 흐른 뒤에야 더 분명해진다.

2007년 태안 앞바다를 뒤덮은 기름을 닦기 위해 전국에서 시민들이 모였다. 당시 약 123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참여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지금도 사진과 문서를 통해 검은 기름을 닦던 시민들의 모습을 다시 만날 수 있다.


▲2007년 태안지역 허베이스피릿호 원유유출 사고 피해복구를 하는 자원봉사자들. 당시 현장을 남긴 기록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그날 시민들이 어떻게 재난에 대응했는지를 다시 살펴보게 한다. 사진제공: 자원봉사 아카이브(경상북도 고령군) ⓒ 경상북도 고령군

올해 '재난 현장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구혜은씨도 태안유류피해극복기념관에서 당시 기록을 만났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때 나는 무얼 했던가?' 그는 참여 소감에 사진 속 봉사자들이 평범한 시민들이었다고 썼다.

바다의 기름을 건져내고 오염된 돌을 닦는 모습을 보며, 자신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손을 보탤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과거의 자원봉사를 남긴 기록이 오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돌아보게 했다.

그가 이번에는 기록하는 봉사자로 현장에 나섰다. 누군가 남긴 기록을 보던 사람이 다른 사람의 활동과 경험을 남기는 사람이 된 것이다.

'재난 현장 기록자원봉사자' 운영해보니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는 올해 처음 '재난 현장 기록자원봉사자'를 운영했다. 기록자원봉사자들은 경상남도 산청의 재난 이후 회복 과정, 경기도 동두천의 폭염 대응 활동, 경기도 파주의 수해복구 현장을 찾았다. 사진을 찍고 메모를 남기며 주민과 자원봉사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재난 현장에는 피해 규모와 복구 활동사진, 참여 인원과 지원 실적이 남는다. 그와 함께 남겨야 할 이야기도 있었다. 주민들은 피해를 겪은 뒤 어떻게 생활을 이어갔는지, 자원봉사자들은 무엇을 보고 현장을 찾았으며 누구와 어떤 일을 했는지다.

이런 경험은 활동이 끝난 뒤 작성하는 실적만으로는 알기 어렵다. 기록자원봉사자들은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나 그 과정을 물었다.



▲산청 현장에서 기록자원봉사자가 자원봉사자의 경험을 듣고 있다. 준비한 질문에 답을 받는 데 그치지 않고, 이야기 속에서 다시 질문을 이어가는 것도 기록 활동의 중요한 과정이었다. ⓒ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

경남 산청에서 만난 시민정원사협회 박성만 회장은 지난해 산불 당시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진화 헬기가 철수하고, 낮은데도 불꽃이 보일 정도로 불길이 번지던 순간이었다. 처음에는 산불 당시 기억에 남는 순간을 묻는 인터뷰였다. 이야기를 듣던 기록자원봉사자가 한 번 더 물었다.

"그때 선생님은 무엇을 하고 계셨나요?"

당시 박 회장은 각지에서 들어온 구호품을 이재민 대피소로 나르고 있었다. 구호품을 옮기던 중 경북의 헬기 추락 사고로 산청에서도 헬기 진화가 중단되는 모습을 지켜봤다고 했다. 불길은 거셌고 산 능선 너머로 번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는 당시의 안타까움과 긴박했던 순간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한 번 더 묻자, 박 회장이 누구를 돕고 있었고, 그 자리에서 무엇을 지켜봤는지가 드러났다. 구호품을 운반했다는 활동 내용에 당시 현장의 긴박함과 그가 느낀 마음이 더해졌다.

현장의 자원봉사자들은 이미 저마다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무엇을 했는지만 물으면 활동 내용으로 끝날 수 있지만, 그때 어디에 있었고 무엇을 보았는지 물으면 그날의 경험이 따라 나왔다. 준비한 질문에 답을 받는 것만으로 인터뷰가 끝나지 않는 이유였다.

기록하니 자원봉사의 이유가 보였다

산청의 지역활동가 김은영씨는 수해를 입은 친구의 집을 돕다가 봉사의 범위가 자연스럽게 넓어졌다고 말했다. 친구의 비닐하우스를 정리하고 나니 바로 옆의 피해 농가가 눈에 들어왔다.

"연로하신 어른들의 비닐하우스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면, 그걸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김 활동가는 자신들이 특별해서 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조금 더 시간을 내고,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친구를 도우러 갔다가 이웃 농가로 발걸음을 옮긴 과정에는 피해를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마음이 있었다.

파주의 수해복구 현장에서는 박옥자․이자혜 봉사자를 만났다. 현장이 어떠냐고 묻자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말했다.

"마음 아픈 일밖에 없죠."

왜 그렇게 마음이 아팠냐고 다시 물었다.

"우리도 같이 농사짓고 그런 사람들이니까."

곁에 있던 다른 사람도 말을 보탰다.

"1년 노력이 허사니까요."

침수된 비닐하우스는 이들에게 단순히 치워야 할 복구 대상만은 아니었다. 같은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기에 그 안에서 한 계절의 노동과 생계를 보았다. 기록에는 왜 옆집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는지, 왜 다른 농부의 피해를 자기 일처럼 마음 아파했는지가 남았다. 재난 현장에서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에 더해, 그 일을 하게 된 이유도 함께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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