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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관리자 | 등록일 | 2023-1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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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공동체 구성으로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구나"
<‘재난현장 속 자원봉사자’를 찾습니다> 정 인 섭 님
2022년 8월 8일 서울 강남 일대를 강타하던 비구름이 저녁 무렵 경기도 광주시로 넘어왔다.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면서 침수 피해와 도움을 알리는 신고가 폭주하기 시작했다.
집중호우 예보에 따라 비상근무 중이던 정인섭 광주시 자율방재단(이하 방재단) 사무국장에게 하천 범람에 따른 침수차 신고가 전달됐다. 그는 경찰과 협력해 사고현장으로 출동하면서 출동로 변경을 요청했다. 일반적인 경로는 이미 침수가 진행됐을 거란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요청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면서 경찰과 소방이 진입한 도로는 이미 침수돼 요구호자에게 접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른 도로로 현장에 접근한 그가 홀로 구조를 감행했다.
“차 보닛 높이까지 물이 차오르면서 운전자가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어요. 많이 다녀봤던 현장이라 주변의 지리와 지형을 잘 알고 있어서 하천이 아닌 반대편 산쪽에 붙어서 진입한 뒤 걸어 들어갔어요. 물살이 차고 세서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운전자를 안전하게 구조할 수 있었습니다.”
8일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한 폭우는 11일까지 계속됐다.
사흘간 광주시에 내린 누적평균 강우량은 617mm. 하천이 범람하고, 산사태 등의 토사유출로 도로가 유실되거나 붕괴됐다. 주택 및 상가가 침수되고 논과 밭이 물에 잠기는 등 피해가 속출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인명 피해도 발생했다. 사망자와 부상자, 실종자 소식이 잇따르자 그는 방재단 대원들과 함께 실종자 수색에 투입됐다. 급류에 떠내려간 노인남매를 찾기 위해 광주시 관내 하천변 일대를 샅샅이 뒤졌다.
“팔당댐 상류부터 찾아나갔어요. 동생분은 실종 3일 차에 우리 대원이 물에서 시신으로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언니분은 거의 100일간 겨울에 물이 어는 시점까지 수색을 계속했는데 찾지를 못했어요.”
고인의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이 그의 목소리에 짙게 배어났다.
“제도권에 들어와서 봉사할 거라고는 생각을 안 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흔쾌하지 않았어요.”
정 사무국장에게 어떻게 자율방재단을 통한 봉사 활동을 하게 됐냐고 묻자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이 튀어나왔다.
올해 38살인 그는 무선통신이 낯설지 않던 시절에 성장해 자연스럽게 무선통신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성인이 되었을 때 무선통신사(이하 무선사) 자격증을 땄다. 차를 운전하기 위해서 운전면허가 필요하듯 무선통신도 지정된 주파수에서 지정된 형식으로 교신을 해야 하기에 국가자격 시험에 합격해야만 통신장비를 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격증을 취득하고 아마추어 무선사 동호회에 참여해 함께 취미생활도 하고 때때로 봉사활동을 하던 때, 광주시에 살고 있던 아마추어 무선사들에게 광주시 자율방재단에 참여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제가 무선사 자격증을 따고 4, 5년 지났을 무렵이었을 거예요. 2008년도였던 것 같은데 광주시에서 자율방재단을 만든다고 무선사 자격으로 참여해달라고 하는 거예요. 무선통신이 재난 시 상황전파와 의사소통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거든요. 없던 조직이 새로 만들어지면서 지역에 재난과 연관된 단체들을 다 끌어모으는데 참여해야 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많았습니다.”
지역자율방재단 출범은 2005년 1월 자연재해대책법이 개정되면서 예정된 일이었다. 당시 법 개정을 통해 지역의 자율적인 방재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지역주민, 봉사단체, 방재 관련 업체, 전문가 등으로 지역자율방재단을 구성ㆍ운영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지역자율방재단 구성 근거가 마련되자 전국적으로 지역자율방재단들이 하나씩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광주시 역시 이러한 흐름에 편승했다.
그러나 재난과 연관된 단체들을 모아놓았을 뿐 뚜렷한 활동 및 운영 방안과 체계를 제시하지 못하다 보니 단체들의 협의체 이상의 역할을 하기란 불가능했다. 단체별 관심 사항이나 참여 의지에 편차가 심하면서 안에서의 좌충우돌도 많았다. 결국 3, 4년간의 혼란과 진통을 거쳐 광주시 자율방재단은 단체가 아닌 개인 중심으로 헤쳐 모이게 된다. 재난 및 비상 상황에서의 현장 안전조치에 관심과 의지가 있는 지역 주민들 중심으로 재편성된 것이다.
그는 계속 남아있기로 결정했다. 아니, 조금 더 열심히 참여하기로 했다. 이미 몇몇 재난 현장에서 사람을 도와준 보람을 느낀 뒤였기에 재난 현장에서 아마추어 무선이라는 전문성을 살린 봉사가 꼭 필요하다고 여겼다.
“휴대폰이나 스마트 폰이 없던 시절에서는 무선통신이 비상 상황에서 엄청나게 많은 활약을 했습니다. 기관 지자체 상황실이나 소방, 경찰 상황실로 현장 상황을 전송해주면서 신속한 대응을 가능하도록 도왔거든요. 지금은 기간 통신망이 발달하다 보니 20, 30년 전만큼의 역할은 못하지만 과부하, 정전 등으로 기간 통신망을 사용할 수 없는 경우에는 아마추어 무선이 유일한 대안인 셈이죠.”
실제로 작년 수해 때 전기가 끊기면서 기간통신이 마비되자 그를 비롯한 아마추어 무선사들이 재난 현장에 나가 상황실을 겸하면서 지차체를 비롯한 재난 관련 기관 등에 실시간 재난상황을 전파했다. 지금까지도 행정안전부가 예산을 투입해 아마추어 무선사들을 계속 양성하는 이유다.
재난 상황에서 무선통신의 중요성은 민관 사이에만 강조되지 않는다.
2017년 12월 21일 29명이 희생된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사건이 대표적이다. 2층 여자 목욕탕에서 구조요청 신고가 계속됐지만 소방 무전은 먹통이었다. “전화가 쏟아지고 무전이 안 들려 누가 어디에 있다는 걸 도저히 알 방법이 없었다.” 2층 진입 지시가 구조대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서 2층 여자 목욕탕에서만 스무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2019년 4월 강원도 산불 때도 소방 무전이 먹통 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당시 산불은 고성군에서 시작돼 인제군과 속초시, 강릉시와 동해시 지역까지 번진 초대형 산불로, 국가재난사태가 선포될 정도였다. 하지만 지자체는 물론이고 지휘본부와의 교신도 두절되곤 해서 자칫하면 투입된 소방관들의 안전은 물론, 더 큰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었던 상황이 존재했던 것.
이렇듯 재난이 점차 대형화, 복잡화되어 가는 상황에서 기관 간, 민관 간 신속한 무선통신은 피해 경감에 매우 핵심적인 요소다. 정 사무국장은 이러한 무선통신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그가 생업에 종사할 때조차도 손에서 무선기를 떼지 못하는 이유다.
“재난이 발생하면 신고가 폭주하면서 현장에 나갈 인력이 부족해요. 소방관이나 경찰관, 또는 공무원들이 현장에 오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방재단 대원들이 최초로 현장에 가서 초기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자주 있어요. 그래서 저는 방재단을 재난 예비군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역자율방재단은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로 구성이 되어 있어 정부의 재난 대응 전문 인력이 도착하기 전 사전단계에서 현장의 안전조치를 즉시 실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익숙한 지리와 자원 등에 기반하여 신속하고 효과적인 대처로 피해경감에도 크게 기여한다. 보직 순환되는 공무원보다 현장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가 높은 대원들도 여럿이다.
거기에 광주시 자율방재단의 경우 일하는 전문 젊은 봉사자들로 구성돼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른 시군의 경우 은퇴 이후 고연령의 대원들이 많은 편인데 반해 광주는 7~80%가 50대 이하의 대원이다 보니 현장에서 적잖은 활약을 한다는 것. 특히 각자 전문분야들이 있다 보니 큰 도움이 된다는 자랑도 그는 빼놓지 않는다.
하지만 생업과 병행하며 무보수 재난 예비군으로 활동해야 하다 보니 활동에 한계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 역시 위기 상황을 대비해 대기 요청을 받지만 생업을 포기할 수는 없다 보니 필요한 요청만큼 응답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상황은 다른 대원들 역시 마찬가지. 이러한 문제가 수년째 지적되면서 지역자율방재단 활동이 자원봉사 성격을 띤다 하더라도 방재활동을 위해 재난 현장에 투입되는 인력과 방재장비(포크레인, 지게차 등)에 대해 최소한의 실비를 보상해줘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한 연구조사에 따르면 현장 출동 경험이 있는 소방관의 90% 이상이 방재단의 실비 지급 필요성에 동의했다. 방재 활동에 대한 보상제도가 미흡할 경우 신규단원의 충원이 어렵고, 생업에 따른 활동 참여가 저조해지면서 민간 방재조직이 점차 약화될 것이라는 진단이다. 권한 부재로 인해 현장에서 적극적 행동이 어려운 것도 활동의 어려움이라고 설명한 정 씨.
“지침이나 매뉴얼에는 현장 통제 및 대피 유도를 하라고 되어 있는데 방재단은 민간 자원봉사자 신분이라 법적인 권한이 없거든요. 그러다 보니 통제를 해도 따르지 않는 분들도 많고 위험 상황에서 그걸 강제할 힘도 없다 보니 문제가 발생합니다.”
시민의식 역시 아쉽다. 침수된 차의 운전자를 구조하고 나면, 침수된 차를 꺼내달라고 요구하는 운전자도 많다. 집에 물이 세서 도움을 주러 가면 도배와 장판까지 해결해달라고 생떼를 쓰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마당에 있는 나무가 바람에 쓰러졌는데 그 나무를 치워달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신고자들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상황들을 반복해서 접하다 보면 힘이 쭉 빠진다는 그.
“그분들 입장에서 평생 한두 번 겪을 상황이라 이해는 되지만 저희는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하루에도 10건 이상 그런 상황을 맞닥뜨리거든요. 최대한 이야기를 들어드리고 설명도 드리지만 엄밀히 말하면 사유재산에 속하는 것들이라 본인이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더 많은데 무보수 자원봉사자에게 좀 과도하게 요구하는 측면이 많죠.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현장에 가야 할 골든타임을 놓치는 것도 안타깝고요.”
비가 오거나 눈이 오면 가족들에게 집에 있으라고 하는데 정작 본인은 늘 집 밖이라는 그는, 인터뷰 당일 날도 초등학생 자녀들에게 우산 잘 챙기라는 당부만 하고 오전부터 대기 중이라고 말했다. 마침 광주에 호우주의보가 발효됐기 때문. 일상이 아이러니라는 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15년을 넘게 자원봉사를 계속할 수 있었던 동력은 무엇일까?
“대원들 힘이 커요. 10~15년 동안 현장에 계속 나오시는 분들이 여러 명이세요. 그분들이 현장 대처를 늘 해주시니까 저도 계속 나오게 되고, 무언가를 할 힘이 생기니 우리 방재단이 돌아가는 거죠. 그리고 무엇보다 성취감이라고 해야 하나? 자기만족이겠지만 제가 현장에 와서 뭔가를 해결했을 때 오는 보람이 커요. 막힌 도로 통행을 가능하게 해준다거나 인명 피해를 예방한다거나 하는 활동을 하다 보면 내가 공동체 구성원으로 꼭 필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느끼게 되는 거죠.”
강한 빗줄기가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자 그의 무전기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그가 서둘러 짐을 쌌다.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수첩에 이렇게 적었다.
“이름없는 작은 영웅, 자원봉사자가 또 다른 재난 현장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주관 – 4·16재단 협력 – 한국중앙자원봉사센터 후원 –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글 – 유해정 (성공회대 사회과학연구소)